예전에는 교회가 동네의 언덕위에 위치를 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당시 사람들이 나름대로 성경에 나오는 표현대로 언덕위에 교회를 세웠던 것 같다.
물론 의미를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당시 높지 않는 건물들 틈에서 높은 교회의 종탑은 어디서나 보이는 일종의 '신성'함 비슷한 것이었다.
마치 마을 입구를 차지한 장승같은 수호의 개념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를 선점하면 그 마을은 장승을 없애야 하고 우상을 없애는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랬지만 오늘은 어떤가 오히려 그렇게 없어진 장승들은 일종의 상징이 되어 오히려 그때보다 더 큰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 것을 보면 눈에 보이는 것에 의미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사역하는 교회에 오는 시간에 지나는 버스의 풍경을 보면 다양한 생각을 한다.
걸어 오는 사람을 중심하면 상가교회를 하거나
조금 떨어진 곳에 교회가 있다면 차를 이용해야 하거나 등 여러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교회는 진정 무엇일까?
오늘도 마을이라는 일종의 공동체가 있는가?
있다면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생각을 한다.
상가에서 개척한 교회는 성도들이 늘면 어쩔 수 없이 자기 건물 교회로 이사하며
그동안 함께하던 이들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핵심 멤버니 하면서 결국 교회를 따라 수십 가정이 교회를 중심으로 함께 이사를 하는 진풍경도 벌어지기도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오늘의 현실의 문제일 것이다.
조물주 보다 높다 하는 건물주의 위세나 그렇다고 상가에서 수십년을 그 인원으로 견뎌내는 어느 목회자의 고단한 삶도 있다. 이것이 오늘 살고 있는 무시 못할 현실이다.
생각해보면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는 교회가 있다.
교회는 마을에 영향을 미친다. 곧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오늘 삶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해관계가 농경사회나 집단적 공단이나 작업 중심도 아니다. 대체적으로 비용을 중심으로 아파트의 가격이나 동네의 형성에 따라 입주민, 원주민등으로 분류되면 사는 형태다.
물론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지만 이런 이들에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솔직히 여러 형태의 교회가 존재할 필요가 있지만 어디 그런가?
교회도 일종의 비용 단체다. 비용이 없다면 건물에서 버틸 수 없다. 말 그대로 문을 닫아야 한다.
예전 같으면 그 마을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하면 문을 닫았다. 또는 우상숭배가 심각해서 그런 이들의 거센 박해로 인해 교회가 버티지 못했지만 오늘 우리 주변의 교회는 '회원'이 없는 곧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 유지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문을 닫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명감이 있던 없던 상관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낙인찍힌다.
여전히 생각한다.
어떻게 교회를 세워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교회는 어때야 할까? 우리 마을에 교회는 그들의 필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늘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