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우리 하는 말로
지갑은 빨리 열고 입(말)은 늦게 열라고 한다.
맥락은 지갑보다 입에 있고 입은 지갑이라는 행동에 뒷받침 되라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입 곧 말에 있다.
나이가 들면
나이가 주는 힘이 있다. 믿든 말든.
물론 요즘은 아이들 말로 '그래서' 일뿐인 나이지만 그렇다.
나이가 계급장이던 시절도 지났고
나이가 하늘의 질서라고 했던 시절도 지났다.
나이가 들면 곧 어른이라는 시대는 아니다.
그래서 나 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도 인정하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물론 언제든지 지갑만 열면 좋겠지만 이 또한 쉬운 건 아니다.
각설하고
그래도 보편적으로 모임, 공동체가 형성되면 나이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다보면 나이든 이들이 조심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이가 적은 이들이 나이든 이들을 그래도 대우하려고 하기 때문인데
그러다보면 나이가 있는 이들이 이를 알고 누리다 보면 귄위가 되고 권위가 되면
지시하거나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깥 세계처럼 좀 욕도 먹고, 말 했다가 잘 모른다는 핀잔도 들으면 함부러 말하지 않지만
이런 공동체에서는 그런 경계가 어느 정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천적이 있어야 하지만 ㅋㅋ 그렇다고 미운 털 밖힌 사람처럼 바른 말만하는 이들은 나름 불편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말을 안할 수 없다.
말을 시키기 때문이고 말을 해야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든 이들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제의 이야기를 할 때는
자신의 주장과 사실을 구분해야 하고 자신의 주장을 완성하기 위해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우,좌파로 나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모든 부분에서 그저 경험한 것, 들은 것을 전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듣는 이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며 소속된 공동체의 공동체성도 고민할 정도의 소양을 갖춰야 한다.
그런 자세는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것이며
사람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것만이 유용하다. 물론 그런 도구에 다양한 지식이 함께 필요한 것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만 옳다는 자세 안 된다.
나는 모른다는 자세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