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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설교자들이 요한복음을 살피면서 크게 잘못된 것 중 하나가 기적 그 자체와 당사자의 믿음을 부각하는 해석입니다. 지난 시간에 아이를 둔 왕의 신하 그리고 오늘 본문의 38년된 병자 사건이 대표적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현실에 필요한 내용을 토대로 믿음을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은 취업이나 결혼 걱정 같은 일에 대해서 나이가 있는 분들은 사업, 건강과 같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진 내용을 접할 때 귀가 열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경을 위한 북극의 눈이 녹는 문제,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 하마스의 전쟁도 사실은 관심 밖에 있다는 것이죠.
아무래도 귀가 열려야 말씀을 들을 수 있으니 많은 목회자들이 섣부르게 방정식에 대입하듯 말씀을 풀어 가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도 38년 되었다는 말에 우리 삶에 해결되지 않는 여러 문제, 남편, 아내, 자녀들과의 갈등을 마치 수학 공식의 X 값으로 넣어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거나 희망을 주는데 사용합니다. 하지만 본문에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사건이 안식일에 행하여 지면서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유대인들의 삐뚤어진 태도는 병자의 회복보다 더 중요하고 이를 통해서 예수님을 실제로 죽이고자 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유대인들은 왜 안식일에 이렇게 집착하는가? 그 일이 생명을 다루는 일보다 중요한가? 이러한 구조를 오늘 대입을 한다면 유대인처럼 고착화된 안식일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가? 불과 우리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몇 개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예배당이라는 건물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드렸던 예배보다 더 올바른 예배라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돌아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5장 19절 시작을 ‘그러므로’라고 시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가를 이끌고 있는 본문은 ‘안식일’ 그리고 ‘일하시는 아버지’의 연결이 이어지고 있음을 볼 때 ‘일하시는 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시선이 오늘 우리 예배에도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 즉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고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명제를 두고 38년된 병자의 고침은 믿음과 연결되고 그 결과인 생명에 이르렀는가? 라고 묻는다면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매우 중요한 말씀인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하기 위해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생명이 병 고침으로 얻어진 육신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삶의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 죄를 범한다면 그 병보다 ‘더 심한 것이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죄를 범한다’ 어떤 의미일까요? 영적인 것에서 다시 육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는 길을 포기하고 육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니고데모가 이해하지 못한 그것 바로,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해야하는데 육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38년된 치료할 수 없는 병은 그를 평생 행각에 묶어두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평생을 우물에 생각이 묶였죠, 그러니 낫고자 하느냐는 6절의 말씀에 그의 대답은 ‘낫고자 합니다’가 아니라 7절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이미 그는 낫고자 하는 마음보다, 낫지 못하는 자기만의 분석과 결과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되면’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나, 내가 돈만 있었더라면, 내가 누구를 알았더라면 하는 사람이 있죠. 본문의 병자는 다른 사람은 ‘나보다 빠른’ 운 좋은 사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남이 가진 그래서 자기에게는 순서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육신은 38년 동안 병들어 연못 근처에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도 누구보다 먼저 들어가면 낫는다는 그 한가지에 묶여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뀔까요? 병이 낫는다고 38년을 지켜보며 혹여나 베데스다에서 처음 물이 동하여 나은 사람을 보았다면 그가 육신의 병이 나았다고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집착하고 그 안에서 분석하고 살아온 삶이 바뀔까요?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더 이상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본문에 보니까. 14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라고 했는데 그가 있는 곳은 ‘성전’이었습니다. 38년동안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들어 갈 수 없는 곳이 ‘성전’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법에 병자는 고침을 받기 전까지 그리고 제사장의 확인이 있은 후에 성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회적 활동의 시작이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병자’는 고립된 약자일 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배제된 자라는 것이죠. 병자가 성전에 들어갔다는 의도에서 저자는 그가 적어도 유대 사회에서 표면적으로 ‘회복된 삶’을 보여줍니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우리 모두도 선행되는 것이 관계의 회복입니다. 부부 서로간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형제들의 관계부터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한 관계들이 회복된다면, 아마 이런 일에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런 일은 없을거야. 절대로 정치적 갈등이 있는 두 집단이 서로 친해질 수 없지’라고 할 것입니다. 아무튼 올바른 관계의 회복은 38년이나 묶여 있던 ‘병’에서 해방됨과 함께 ‘성전 안에서’ 이루어진 관계 회복으로 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복이 ‘안식일’에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회복’과 연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16절에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에 근거해 예수님을 평가했지만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그들이 그토록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께서 ‘자신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버지가 일하심을 자신도 병자를 안식일에 고침으로 안식일에 대한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일’이라고 하는 부분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바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요지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분명한 계명 준수입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사람의 편의에 따라 수정되고 고착화된 그릇된 유대인의 율법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든 악법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을 고치는 일’과 ‘안식일의 의미’가 부딪쳤습니다.
  우리의 생각에서 일은 돈을 버는 일, 자신의 쾌락을 좋는 일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크게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세계가 질서를 갖고 운영하도록 하시는 것(경륜, 이코노믹), 그리고 좁게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류에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마치 ‘안식일에 병에 매여 있는 병자’를 고치듯 고치시고, 생명을 수여하시는 일을 예수께서 자신도 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이는 유대인에게 걸림돌이 되고 마는 것이죠.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 삶의 문제를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그저 관심없이 우리가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살펴본 눈으로 본문을 본다면 어떤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가요? 6절이 대표적으로 ‘보시고’, ‘아시고’, ‘~~하고자 하느냐’는 표현입니다. 이런 걸 보면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같이 우리 인생을 신적인 권위로 아신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죠. 따라서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는 의미가 되고, 8절 ‘일어나 들고 걸어가라’하는 표현은 어디와 연결이 됩니까? 요한복음1장에 창조의 사역 그리고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창조 사역으로 17절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는 말씀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어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이랬다 저랬다 일관성 없이 요즘 표현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쓴다면 독자가 그런 글에 어떻게 생각을 열고 감동하고 하겠습니까?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흐름의 일관성이 있듯 요한복음 저자의 일관성은 ‘예수께서 누구신가?’라고 하는 부분에서 ‘예수는 하나님이시다’를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이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시는 분이시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일어나고 있는 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마지막에 고난을 받는 장면까지 가는 것입니다. 여기 초반부에 38년된 병자를 아셨습니다. 어떤 상태를 알았는가? 3절에 ‘그 안에 많은’이라고 했다면 왜 한 사람 38년 병자에게 이렇게 하셨을까? 다른 병자는 안고쳤을까? 아니면 38년된 병자가 일종의 샘플인가요? 저와 여러분이 옆에 있었다면 과연 보고도 가만히 있었을까요?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본문에서는 ‘나으라고’ 하셨고 ‘곧 즉 ‘나아서’입니다. 여기서 도무지 38년된 병자가 한 일이라고는 또는 그가 예수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없는 상태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고 간결하게 ‘나으라’, 그래서 ‘나았다’, 빛이 있으라, 그래서 빛이 있다. 주인공이신 예수께서 하나님만 하시는 일을 하시는 장면을 저자는 소개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놀라운 장면을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하는 ‘ 아들의 관계로 풀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장에서는 누가 일하실까요? 자연스럽게 성령께서도 그렇게 일하심의 관계로 풀어갑니다.

이사야 43:16–21 (NKRV)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일하시니 감사하네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하심이 저와 여러분이 주일 예배를 통해 입례 찬송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을 듣고, 보고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면서도 ‘찬송하지 않는’것 성전 안에 있으면서도 ‘찬양과 경배’하지 않는 것이 ‘더한 죄를 짓는’ 것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시편 13:1–6 (NKRV)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혹여 지금의 시간이 힘들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 미치지 않는 것 같이 느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서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그 확실한 증거가 5절에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는 고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려 받기만을 바라지 마십시오. 오늘 병자가 기대하지 않고 받은 고침으로 말미암아 그는 성전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가 그 구원의 확실함을 붙잡고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만일 여러분 주위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고침을 받고, 사업이 회복되고 말 그대로 기적을 체험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나는 이렇게 오래 믿었고, 나도 간구하는 바가 있는데’ 이건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본문의 한 사람 즉 병자를 일반화해서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충분히 은혜를 받은 38년된 병자로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오랜 시간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이들에게는 예수께서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분으로 보일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분’임을 우리는 이미 받은 구원을 통해 기뻐하는 자세야 말로 올바른 믿음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예배 드리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준비된 마음과 자세로 그저 성전 안에 있다는 감격에서 벗어나 구원의 감사로 부터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1:4–5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38년된 병자는 그렇게 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났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에서’ 예수를 만날 수 있었고 그에게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예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회복은 그저 양문에서 병자들이 모인 베데스다보다 더 중요한 성전이 아니라 참된 회복을 경험한 ‘안식일’이었습니다. 진정한 안식일은 죄로 병든 우리의 삶이 세상의 분주복잡한 일과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게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회복을 맛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맛보는 것입니다. ‘앞으로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진정한 회복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될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마트에서 맛보는 음식이 맛있다면 그것을 사서 집에 돌아가 함께 요리를 해서 먹을 때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즐거움이 있듯 지금의 안식일인 주일이 온전한 쉼을 얻는 다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의 쉼을 고대하기 소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예수는 이런 날을 행하심으로 우리도 그런 날을 기다린다는 유대인들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안식일을 어기신분,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말함으로 신성모독의 죄를 물어 죽이고자 합니다.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우리가 들은 말씀’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대한 말씀을 히브리서 2:1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그저 당연시 여기고 우리 삶과 연결하지 못할 때 흘러 떠내려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경고로 히브리서 2:3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심판을 피하지 못함을 경고합니다. 주님께서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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