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사울에 대하여 용서를 하고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다.
이런 자세를 갖는 훈련은 곧 신앙이다. 믿음이다. 기도이다.
곧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사실 우리는 자꾸 다윗과 우리를 비교한다.
그런데 현실은 아히도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다윗은 사울에 대하여 용서를 하고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다.
이런 자세를 갖는 훈련은 곧 신앙이다. 믿음이다. 기도이다.
곧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사실 우리는 자꾸 다윗과 우리를 비교한다.
그런데 현실은 아히도벨과 같은 사람이다. 지극히 그렇다.
자신의 주변에서 손해, 고통, 억울을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스스로 좌절하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인생이다.
용서보다 복수를 선택한다.
아마도 길 표지판이 있다면 우리는 그나마 투덜거리면서도 용서를 향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서는 그 갈림길 조차 없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복수의 길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할 뿐이고 그때야 비로소 절망이 바로 앞이라는 사실을 알게될 뿐이다.
아니라구요, 그건 기회가 없기 때문에 복수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 복수의 화살은 자신의 가슴 깊은 곳 '화'로 쌓이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