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자.
3절에 바울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3가지를 차례로 나열한다.
이러한 3 가지는 먼저 '기억함'이라는 즉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로 편지를 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믿음, 사랑, 소망이 등장하고 이러한 표현은 데살로니가 후서에도 등장한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복음이 무엇인가는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역사라고 말한 것은
믿음의 역사는 믿음의 행위라는 것이다.
주일 오전 설교에서 '표면적'인 경우와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드렸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는 올바름 즉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요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동행과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믿음은 내가 믿는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역사/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을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바울의 '기억'을 통해 확인된다. 따라서 24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믿는다는 말에서 끝나지 않고 왜 믿음과 행위가 분리되거나 나타나지 않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믿음의 행위는 사랑의 수고로 나타난다.
사랑은 다양한 맛을 가진 종합이다. 사랑은 오래참고 ~~ 등 사랑의 맛은 오묘하다.
그런 사랑의 수고는 믿음의 행위에 가장 대표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드러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순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보여야 한다.
이처럼 예수께서 사랑의 수고를 하신분이다.
그렇다면 세상과 구별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세상은 신념과 이념에 따라 즉 신념과 이념을 믿는 행위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신념과 이념이 아니라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이다.
이는 결국 온전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앎은 24년에도 분명하게 필요하다.
때론 지키고 힘들기 때문에 위로의 말씀과 공감이 필요하고 맞는 말이지만
힘써 예수를 알고자하는 일에도 게을러서는 안된다.
소망은 바라는 것을 갖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24년에 사람들과 나누는 많은 새해 인사와 다른 것이다.
높은 산, 드넓은 바다를 보며 손을 모으고 가족의 안전과 건강, 사업의 잘됨이나 형통을 인사처럼 빌어보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도록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온전한 그리스도는 늘 소망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벧전 3:13-22)
믿음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길을 걷게한다.
사랑은 걷는 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도 계속되는 아주 매력적인 것이다.
24년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런 3가지를 겸비한 자이므로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24년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