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일종의 순서를 갖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봐요. 내가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음식을 먹으면서 '와 맛있다'라고만 하지 않을거예요. 이건 이래서 저래서 이런 맛이 나는 구나 하면서 말할 거예요. 그렇다면 옆에 앉은 누군가는 '넌 참 피곤하다. 그냥 먹고 맛있으면 되지 왜 맨날 분석을 하냐' 할 거예요.
음 이 말은 잘아니까 그 맛보다는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는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거예요. 그렇지만 반은 틀리고 반은 맞는 말이죠. 그래서 나오는 말이 모르는게 약 아닐까요. 그냥 모르고 맛있다. 없다라고 하면 끝이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이분적으로 결론나지 않죠. 조금 생각해보면 조미료나 소위 말하는 업체 맛도 있고 건강에 좋은지도 신경써야 하고 당뇨가 있다면 더 조심하겠죠. 그러면 잘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까요? 영양학 책을 펼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요즘은 sns가 발달해서 검색해보면 알잖아요. 그것처럼 조금만 찾아보면 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랍니다. 그래서 지금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너무 분석, 분해를 해뒀어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힘들어 했어요. 지금처럼 공부해야 하는 식이었지요. 살짝 그러면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 통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먼저 이야기한 '맛있다'처럼 말이죠. 어쩌면 앞서 살펴본 '오직'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말이지만 차분하게 들여다보니 보이는 거죠. 일단 그렇다고 쳐요.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예요. 성경을 읽고 아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이렇게 하다보니 백명이면 백명이 말하는 하나님이 다 다를 수밖에 없죠. 일단 성경이 기록된 후부터 신약만 봐도 2천년이 넘었으니 어마무시하죠. 그리고 기원전에 있었던 사람까지 따지면 아이고 머리야.
그러니까. 하나님을 이해(사실 이해는 안되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알아듣잖아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 일단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듣잖아요. 사실 그렇게 하고 나가도 막상 만나보면 설명가 다른 경우가 많죠. 왜냐하면 소개해준 사람이 만난 것과 내가 만난 서로가 다른 입장이니까 그럴거예요. 그래서 소개가 힘든거죠.
그렇다보니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이해가 필요하죠.
그럼 이렇게 말하죠.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데 왜 그런게 필요해라고 말이죠. 맞아요. 하지만 먼저 말했듯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성경이 유일해요. 성경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가 제 각각이라는게 문제죠. 글이 있고 자기 해석이 필요하잖아요. 음 그렇죠. '내가 읽고 그렇게 느꼈어'라고 말하면 그뿐이죠. 하하.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신가? 라는 말은 성경을 통해서 일종에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생각한 것과 비추어 보면 신학이 시작되는 거예요. 더 잘 알면 더 잘 보이는 거잖아요. 알고 먹는 음식이 맛있잖아요. 왜냐하면 내가 안다는 것은 사실 큰 거예요. '아 이게 들어가서 이런 맛이 나는군요'라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속에는 하나님이 이러하시기 때문에 정말 믿을만 한 것이죠.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