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교회는 건물이나 이를 운영할 비용이 없다면 시작할 수 없다.
코로나 이로 인한 작은 교회들의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국 규모로 7~8,000여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은지도 이미 오래이다.
이런 직접적인 타격은 결국 운영할 비용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시대는 물질 곧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돈이 없으면 부정적으로 굶어 죽는 시대이다.
돈이 있으면 믿음도 살 수 있는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시대이다.
그런데 이런 물질 중심의 세상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집중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두드러져 보인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셨다. 약속하신 대로!
그 즈음에 제자 중에 몇이 하던 대로 기도하러 성전에 갈 때
성전 문 앞에 다리를 저는 사람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매일 말이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바라 보았고 그 역시 무엇을 기대하면서 그들을 보았다.
참 이상하게도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어서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준다'라고 했다.
은과 금은 없는데 줄 것은 무엇인가? 그것보다 덜 하지만 쓸 만한 것, 어쩌면 음식이라도 어쩌면 나를 보호해줄 누군가의 소개라도 최소한 한 끼를 해결할 그것이라도 기대했을지 모른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잠깐 생각을 해보자.
돈을 1억즘 준다면 장애를 그대로 가지고 살 것인가?
아니면 매일 구걸하는 삶은 장애로 시작된 삶이니 그가 다시 걷게 된다면 모든 삶의 변화가 일어날까?
오히려 요즘은 전자를 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1억이 내 손에 있는 것과 1억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은 다르다.
티비 모 프로에서 문제를 내고 맞추면 바로 그 자리에서 백만원을 주는 프로가 있다.
현금을 준다. 이것만큼 메리트가 큰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일어나 걸으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의 치료가 근본적으로 일어난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돈을 갖고 사는 기쁨도 물론 클 것이다. 그것으로 누리는 온갖 기쁨은 생각보다 많다.
때론 상대를 향한 권력도 돈에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 사는 삶에 드러나는 불안, 공포, 관계의 깨어짐 등 우리 삶을 뒤흔드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에 만나면 그 좌절은 더 크다.
그래서 건강이 최고다. 마음 걱정 없는 삶이 최고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근본의 해결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곳을 향해 뚫고 들어가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성전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게 뭐가 중한디!
어떤 이들은 그런 기적을 체험하길 너무나 간절하게 기다린다.
근본이 고쳐지는 삶!
이것이 바로 성령의 임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은과 금으로 운영될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주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삶의 근본을 고치는 것이다.
그럼 교회 다니면 병이 고쳐지겠네요?
글쎄요 솔직히 뭐라 답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를 보면 몇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적을 체험하면 다 할 수 있을것처럼 말하지만 그렇게 살아낸 삶은 생각보다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뻔히 알면서도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그러나 기다림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임하신 곳에서 시작된 교회를 통해 기다리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원망을 토로하는 장소가 되기도하고 그 이유와 답을 찾기도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시작 곧 교회의 시작은 은과 금이 아니라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기다리라. 속히 오시리라.
주여 지난 밤 내 꿈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