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분노에 대해 나 자신을 본다.
아내 말로는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대선 이후부터 사람들에 대한 정내미가 뚝 떨어진 기분이다.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는 정도에서 벗어나 법을 초월하고 무시하면서도 관철시키려는 집단적 모습에 상당히 마음을 다쳤다. 아직까지 뉴스나 가능하면 티비 시청을 자제한다. 한편으론 속편하고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도 있다.
교회에서 이웃과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기도하자 할 땐 그게 무슨 대수인가 하는 마음도 든다. 결국 자업자득이다. 마치 우리나라에 앞으로 시작될 불안한 것들에 대해서도 그래 잘해봐라 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나를 덮고 있다. 그렇게 분노를 다스리는 잘못된 방식은 알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잠시의 시간이 다시 묵상하게 하고 내주하시는 성령과의 대화에 참여하게 한다.
반면 이런 공격 포인트를 알았는지 사단의 공격은 어이 없는 부분에서 도발한다. 그리고 분노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사단이 틈탔다고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말하는 이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노라는 연속 공격을 받고 보니 분명 신자에게는 알지 못하는 방식의 공격이 있음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분노는 나에 대한 인정과 연결되어 있다.
목회의 현장에서 성장이 없고 늘 그 자리인 것 같은 성도에게 또는 잘 하다가도 결국 넘어져 다시 돌아가는 구제불능 같이 보이는(중요) 이들에게 목회자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어쩌면 그들은 최선의 힘을 다하고도 넘어지기 일 수고 다시 원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좀 한다고 해서, 내가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보이는 것만으로 단정하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맞는 말'을 할 때 사단은 분노라는 무기를 꺼내든다.
그런 약한 이들의 분노는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다. 처음 글처럼 어떤 이들은 집단 분노를 만들고 행동한다. 자신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태우는 분노로 바꿔 사회와 주변을 태운다. 정권이 바뀌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의 피토하는 소리는 사라졌다. 몇 해전 정권이 바뀌자 다음 날부터 미친듯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더니 바람에 부는 겨처럼 사라진 모습을 보면서 그저 홈플러스에서 때를 쓰고 우는 아이 선물에 언제 그랬냐는듯 웃는 가증한 모습일 뿐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태우는 분노는 병들게 하고 교회를 등지게 만든다.
성경이 말하는 연자맷돌을 지우는 것이다. 덕분에 배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때를 기억하고 함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교제의 모습이 구현될지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안된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볼 때 이런 모습들이 보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럼에도 또 같이 가보자 하면서 앞선 자는 자신의 템포를 가장 약한 자에게 맞춰 함께 걸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