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매월 100킬로미터 달렸습니다.
최근에는 수영이 추가되어 달리는 횟수를 줄였는데
다시 백킬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를 다니면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기대합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 변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는 비슷한 사람들이 다니고 그러기에 자신 역시 약간은 변화의 맛을 누리게 되죠.
그렇지만 진정한 변화는 하루에 정한 것을 감당할 때만 가능합니다.
마치 운동처럼 말이죠. 달리다 보니 달리는 것에도 선생이 필요합니다.
부상 당하지 않고 오랬동안 좋은 취미로 붙이려면 말입니다.
교회와 삶이 연결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둘이 분리 되어야 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세상과 교회 따로의 삶을 살죠. 대부분 그렇습니다.
신앙은 일종의 씨앗입니다. 어떤 계기로든 자신이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다면
씨는 심기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잘 키우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심기운 씨앗을 구원이라고 한다면 구원의 삶을 자신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것은 각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에 따른 훈련과 자신의 혁명은 힘들기 때문에
믿으면 된다는 아주 쉬운 논리를 들먹이는 것입니다.
그게 된다면 왜 운동이나 공부가 기도로 안될까요?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을 노력이라는 길로 가면서 힘들고 어려움을 만납니다. 당연히 말이죠.
잘해보려고 하는데 안되죠. 사람과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등 말입니다.
그냥 두면 편합니다. 그렇게 자리 잡은 것들이니까 말이죠.
집에서도 가구는 그냥 있어도 뒤 아래 먼지가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걸 손대고 청소를 시작하면 분명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도
당장은 먼지와 각종 더러움에 파묻혀야 하는 것도 분명한 것이죠.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게 살기로 씨는 움틉니다. 딱딱한 땅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비집고 올라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힘을 얻는 것도 사실이죠.
마치 자동차의 스타트 모터처럼 말이죠.
그렇게 저단 기어를 걸고 다시 기어를 변속하면서 인생의 탄력을 받아야 합니다.
변화는 그런 것입니다.
다시 포레스트 컴프를 보고 싶네요.